"재정 악화" "역로빈후드 정책"…美 감세법에 쏟아진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BBB)'이 3일(현지시간) 연방 의회를 최종 통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집권 2기 조세 및 복지 구조 재편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법안은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5조달러 증액해 단기적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을 피하는 내용을 담았다. 동시에 트럼프 1기 시절 단행됐던 개인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 조치를 영구화하고, 팁·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세금을 면제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법안 통과 직후, 미국 내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대신, 초고소득층에게 세금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며 '역로빈후드 정책'이란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또 이번 법안으로 단기적 정부 디폴트 위기를 피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고 연방 부채를 급격히 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역로빈후드 정책"… 고소득층에 감세 집중, 복지는 축소트럼프 대통령의 BBB 법안에서 가장 큰 논란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는 축소되는 반면, 최상위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역로빈후드' 성격이라는 점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법안 시행 시 소득 하위 10% 국민은 연간 약 1600달러의 순손실을 입게 되지만, 상위 0.1%는 연평균 10만달러가 넘는 감세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 조세경제정책연구소(ITEP)는 BBB의 영향으로 소득 상위 1%가 누리는 감세 혜택 총액은 1210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하위 60%가 받는 감세 혜택을 모두 더한 수치(560억달러)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규모다.
복지 예산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법안엔 식비 지원 프로그램인 영양보충지원프로그램(SNAP), 저소득층 장학금 제도인 펠그랜트,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축소가 포함돼 있어 약 700만명 이상이 직접적인 복지 손실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정책우선순위센터의 척 마 부소장은 "이번 법안은 그간의 부자 감세보다 한층 더 가혹한 방식"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자원을 걷어 초고소득층에 몰아주는 구조는 비열하고 잔혹하다"고 비판했다.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티머시 브롤리오 대주교도 "이 법안은 가난한 자에게서 빼앗아 부자에게 주는 구조"라며 "정치인들이 추구해야 할 공동선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팁 면세 혜택, 초과근무 수당 비과세 등 저소득 노동자를 위한 조항이 포함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가디언은 "팁 기반 노동자의 40%는 애초에 소득세를 내지 않는 구조"라며 그 실효성이 낮다고 꼬집었다.
"장기적으로 미국 재정건전성 악영향 우려"
이번 법안은 단기적으로 미국 연방 정부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고 디폴트를 피했다는 점에서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과 시장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미국 의회는 정부의 무분별한 차입을 막기 위해 '부채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이번 법안은 다음 달 말쯤 한도 도달이 예상됐던 기존의 36조 1천억 달러에 5조달러 한도를 추가했다. 이에 따라 당장 디폴트 우려는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CBO는 이번 법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10년간 연방 정부의 부채가 총 3조 4천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감세 조치로 인해 세수는 약 4조 5천억 달러 줄어드는 반면, 정부 지출은 약 1조 2천억 달러 감소하는 데 그쳐 재정 적자는 더욱 확대되는 구조다.
이에 대해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최근 "외국 투자자들이 이미 미국 국채에서 관심을 거두고 있다"며 "매주 국채가 수천억 달러 발행되지만 그 수요는 정체되거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연방 정부가 매주 5천억 달러(약 682조원) 정도의 국채를 발행하는 것과 관련해 "투자 수요가 더욱 감소하고 연방 정부의 차입 비용은 상승하는, 실질적인 위험이 존재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블랙록 투자 매니저들은 "우리는 미국 정부의 부채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강조해왔고, 만일 이 문제가 계속 방치된다면 부채는 미국이 금융 시장에서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번 법안은 중기적으로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경고했다. IMF는 수차례에 걸쳐 미국 정부가 중산층을 포함한 증세와 점진적인 지출 감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권고해 왔다.
반면 미국 재무부는 감세가 기업 투자 확대와 경제 성장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이른바 '낙수 효과'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경제가 살아나면 재정 우려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시장 환경과 통화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감세가 실질적인 성장 동력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 시행 이후 미국 자산 가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하긴 했지만, 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미국 경제의 구조적 불안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