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의성군을 지나 안동시,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을 휩쓸었다. 이번 의성-안동 산불은 정부 수립 이래 발생한 단일 산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은 인명·재산 피해를 낸 산불로 예상된다. 산불 피해 지역민으로서 피해 주민들과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산불 재난과 녹색 정치의 역할을 말씀드린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생계가 절실한 이들은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자가격리부터 자녀돌봄 문제까지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방역조치의 무게가 달라진다. 모든 재난에는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 산불 재난도 그렇다. 산지가 많은 지역은 대부분 농산어촌이며 인구가 적고 노인 비율이 높다. 이번에 희생된 이들도 대부분 농산어촌의 노인들이었다. 특히 노인들은 혼자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재난 상황에 취약한 지역의 교통 약자들지난 3월 25일 화요일 오후 급속도로 산불이 안동 도심으로 접근해 오면서 내가 살고 있는 강남동에도 다른 지역으로 대피령이 떨어졌다. 연기는 자욱했고 주민들은 동요했다. 잠시 아파트 정전이 되었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니 엘리베이터 사용을 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9개월 전에 승용차가 생겼다.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15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가서 10~15분 거리에 있는 강 건너 본가로 대피하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지인의 할머니가 인근 아파트 15층에 혼자 살고 계셨다. 80세 이상 할머니가 15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갈 수 있을까? 설령 내려갔어도 자욱한 연기 속에서 택시를 잡고 이동할 수 있을까? 그나마 동사무소에서 동네 구석구석을 돌면서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실어 날랐기에 강남동의 주민 피해는 없었다.
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가 아닌 농촌지역일수록 교통이 불편한데, 교통 약자 비율은 높다. 교통 약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교통이 불편한 역설이다. 교통 불평등은 곧 지역 불평등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어르신 교통기본권은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및 무료버스 정책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통 복지가 발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획일적인 면허 반납 정책을 넘어, 고령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공공교통 강화라는 관점에서 안전장치 지원, 시니어카·서포트카 등의 이동수단 지원, 한정면허제도, 수요응답형 교통과 마을버스 결합 등의 다층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긴급한 재난에 비추어 이런 정책은 한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재난과 위험도 다층적이다. 어르신 이동권 개선은 전반적인 재난 대응 역량을 높이고, 일상적인 기본권을 보장한다.
산불 원인 갑론을박? '모 아니면 도' 식의 접근을 넘어최근 산불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의 규모가 커지고 기간이 길어지는 원인으로 기후·녹색운동 진영과 일부 과학자들은 기후위기를 꼽았다. 최근에는 기후위기를 원인으로 보는 입장을 비판하면서 산림청의 정책, 특히 소나무 중심의 조림 정책이 가장 큰 문제라는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런 주장이 화제가 되자, 침엽수림 정책을 악마화하는 것에 대한 반박과 산주들 입장에선 소나무를 많이 심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방송에선 대피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레기를 소각했던 주민의 사례를 들면서 어르신 세대의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산불 원인 통계를 보면 70% 이상이 인위적 요인인데, 30%가 넘는 비율이 입산자 실화다. 입산자 실화에는 등산객, 성묘객들도 포함된다.
산불 예방을 위해 성묘문화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산불도 성묘객 실화로 시작되었다. 산불 예방을 위해 봄 가을 성묘를 금지해야 할까? 묘지 이장을 장려해야 할까? 불에 타기 쉬운 소나무를 심지 말아야 할까? 기후위기를 산불 변수에서 제외해야 할까? 담뱃불 실화도 원인이니 산 근처 금연령 선포가 더 시급할까?
기후·산림·소방·예방문화 정책 개선이 함께 가야현실의 많은 문제는 한 가지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한 가지 해법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의 원인을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접근하는 일이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기후위기는 기후의 불안정성을 높이므로 자연 재난의 주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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