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심의 달랑 6차례…4·3추가진상조사 주먹구구
22년 만에 이뤄진 정부 차원의 제주4·3추가진상조사. 국비 28억 원이 투입됐지만,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보고서 초안이 정부에 제출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첫 정부 4·3진상조사 당시 보고서 초안이 나오기까지 사전심의만 12차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단 6차례만 이뤄졌다.
첫 정부 보고서 초안까지 12차례 심의 2003년 확정된 4·3진상조사보고서. 정부 차원의 첫 4·3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이후 희생자 배·보상, 각종 기념사업이 이뤄질 수 있었다.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2008년 발간된 '제주4·3위원회 백서'에 나온다.
4·3특별법이 제정되며 2000년 8월 국무총리 산하 4·3중앙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의 객관성과 효율성을 위해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이 설치됐다. 유족 대표와 학자, 각 부처 국장 등으로 구성됐다. 현재의 4·3중앙회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 역할이다.
기획단 산하에 상근하면서 조사할 수 있는 진상조사팀도 꾸려졌다. 조사요원 15명이 2000년 9월부터 2003년 2월까지 2년 6개월간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보고서 초안을 만들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3추가진상조사에서는 4·3평화재단이 조사와 함께 보고서 작성까지 맡고 있다.
보고서 초안이 나오기까지 기획단에서 모두 12차례 걸쳐 사전심의가 이뤄졌다. 진상조사 대상 선정부터 증언조사·외국자료 수집 계획이 논의됐으며, 자료수집 추진상황이 점검됐다. 특히 본격적인 보고서 작성을 앞둔 2002년 10월 9차 회의에선 '목차'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이뤄졌다.
이후 3차례에 걸친 사전심의 끝에 2003년 2월 25일 보고서 초안이 완성됐다. 모두 2년 6개월의 조사기간 안에 이뤄진 것이다. 기획단이 사전 심의한 보고서는 조사가 끝난 바로 다음 달인 2003년 3월 4·3중앙위원회에 회부됐고,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2003년 10월 최종 확정됐다.
"대학원 논문도 이렇게 안 써…주먹구구" 첫 4·3진상조사 과정에서 초안이 나오기까지 심도 있는 사전심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2022년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3년 6개월간 이뤄진 추가진상조사는 조사기간도 1년 더 긴데도 사전심의랄 게 없었다는 평가다. 조사 첫 해 계획안과 수집 자료에 대한 중간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2000년대 초반 정부 진상조사 당시 기획단 사전심의만 12차례 있었지만,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 4·3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의는 절반 수준인 6차례만 열렸다고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마저도 대부분 조사기한 연장에 대한 회의였다고 현 분과위원들은 설명하고 있다.
4·3특별법 시행령상 △추가 진상조사 결과에 관한 안건 △추가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 작성에 관한 안건 등을 분과위에서 사전심의 받도록 했지만 그렇지 않아 절차를 어긴 것이다.
특히 첫 진상조사에서는 보고서 작성에 앞서 목차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목차는 정부 보고서에서 방향과 내용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4·3평화재단은 추가진상조사 보고서 초안 목차에 대해 분과위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채 초안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과위원은 "대학원 논문을 작성할 때도 조사방식과 목차에 대해 지도교수와 치열하게 논의한 뒤에 논문을 쓴다. 정부 보고서를 만드는데, 조사 내용뿐만 아니라 보고서 초안에 대해 사전심의를 안 받는 게 말이 안 된다.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제야 분과위원에게 보고서 초안 보내 4·3평화재단은 조사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초안을 행정안전부 과거사지원업무지원단 제주4·3사건처리과에 제출했다. 아울러 이제야 4·3중앙위원회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 7명에게 보고서 초안을 서면으로 보냈다. 모두 7권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이다.
첫 진상조사 당시 조사기한 전에 보고서 초안에 대한 사전심의가 여러 차례 이뤄졌고, 조사기한이 끝나자마자 보고서 초안을 4·3중앙위원회에 제출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임기 2년간 추가진상조사 과정을 지켜봤던 분과위원 상당수가 이달과 다음 달에 임기가 끝나 새 분과위원들이 사전 심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분과위원은 "내일 모레면 임기가 끝나는데, 새 분과위원들에게 심의를 받겠다는 건지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4·3연구자는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초안에 대한 사전심의가 부실한데, 앞으로 공개될 보고서 내용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된다. 벌써부터 내용이 부실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막대한 국비가 투입돼 어렵게 정부 차원의 추가진상조사가 이뤄졌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한편 4·3추가진상조사는 2021년 3월 전부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이뤄졌다. 2003년 확정된 정부 4·3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과 새롭게 발굴된 자료로 재조사가 필요해서다. 조사 대상은 △4·3 당시 미군정의 역할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 등 모두 6개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 내용이 결정되면 4·3중앙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하고, 국회 보고까지 이뤄지면 정부 보고서로 확정된다. 2003년 이후 두 번째 정부 보고서가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