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부산서 어린 자매 또 참변…8일 전 화재와 '판박이'
부산에서 부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화마가 덮쳐 어린 자녀가 숨지는 참사가 불과 8일 만에 또 발생했다. 추정되는 화재 원인뿐만 아니라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라는 점도 판박이여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3일 오전 부산 기장군 기장읍 한 아파트. 전날 밤 발생한 불로 외벽이 검게 그을렸고, 깨진 유리 파편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단지 내엔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고, 주민들은 폴리스 라인이 쳐진 동 입구 앞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 아파트 6층에서 불이 난 건 2일 오후 11시쯤. 불은 30여 분 만에 꺼졌지만, 집 안에 있던 8살 A양과 6살 B양 자매가 거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자매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부모 집 떠난 직후 불…이웃들 "안타깝다"화재 전후 상황을 지켜본 이웃 주민들은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이들 자매는 부모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주민 김현옥(46·여)씨는 "불이 난 호실 내부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사고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안 좋고 말이 안 나온다"며 "부모님이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데 아이들을 차로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모습을 자주 봤다. 얼마 전 개금동에서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왜 또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호명(85·남)씨는 "아내와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계속 나왔다. 창문 밖으로 불꽃도 튀어나왔다"며 "아이들의 사고 소식에 너무 진정이 안 되고 안타깝다"고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전기적 요인에 스프링클러 없어…8일 전과 '판박이'이번 화재는 8일 전 어린 자매가 참변을 당한 부산진구 아파트 화재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지난달 24일 부산진구 개금동 아파트에서는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불이 나 10살, 7살 난 자매가 숨졌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나 자매가 참변을 당한 것뿐만 아니라, 추정되는 화재 원인이 전기적 요인이라는 점도 같다.
이날 오전 10시 합동 감식에 나선 경찰과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은 불이 시작된 곳이 거실 에어컨 주변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놨다. 또 에어컨 전원이 연결된 멀티탭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발견됐으며, 화재 발생 당시 "에어컨이 가동 중이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8일 전 부산진구 개금동 아파트 화재 합동 감식에서도 발화 지점은 거실에 있던 멀티탭으로 추정됐다.
화재 초기 진압에 중요한 소방 시설인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이번에 불이 난 기장군 아파트는 13층 규모로 2003년에 건축 허가를 받았다. 허가 당시 스프링클러 설치는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소방시설법상 스프링클러 설치는 1990년 6월 16층 이상의 층, 2005년 11층 이상 건축물 모든 층, 2018년 6층 이상 건축물 모든 층으로 확대됐으나 이전에 건축 허가가 난 건물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20층 규모인 부산진구 아파트도 1990년 이전에 건축 허가를 받아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단 이번에 불이 난 아파트에서는 옥내소화전과 자동 화재 탐지기는 설치돼 있었고, 화재 경보도 정상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소방 당국은 전했다.
부산시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겠다는 등 대책을 내놨다. 이날 오전 사고 현장을 찾은 박형준 부산시장은 "소방본부와 함께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 스프링클러가 없는 구축 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며, 아이 긴급돌봄 지원 등 여러 제도도 강화하는 방안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해당 아파트에서는 화재 몇 시간 전부터 전기 공급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주민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15분쯤 정전이 최초 발생해 복구와 정전을 반복하다 오후 9시 50분쯤 정상 복구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 등은 이번 화재가 정전과도 관련이 있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